천 상 병 시인의 술잔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경기도 의정부에 살던
말년에 그는 해질 녘이면 단골 술집을 들러 혼자서 막걸리 한
두잔 걸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당시 단골 술집의 주모는 할머니 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천
시인은 단골 술집을 바꿨다. 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번히 들여다 보던 부인이 슬쩍 물었다. "새로 가는 술
집 주인은 젊은 여인인가 보죠?" 시인은 아이처럼 화들작 놀랐
다가 늘 아내에게 했듯이 "문디 가시나..." 라고 입을 삐쭉거리
며 대꾸했다. " 새로가는 술집은 잔이 더 크다 아이가."
작고한 시인의 부인이 언젠가 사석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남
몰래 술잔 크기를 재 보면서 속으로 득의양양했을 시인의 천진
무구한 표정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술 욕심은 무욕에 가깝다.
그런데 천상병단골 술집을 바꾼 사연은 한 시인의 일화에 그
치지 않는다. 천상병의 술잔은 문학의 존재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ㅡ 중 략 ㅡ
ㅡ 조선일보 문화부 박해현님의 조선대스크 발췌 ㅡ
어디서 본듯한 시가 생각나 친구의 블로그를 뒤져 "비오는 날"
이란 천상병님의 시를 찾아냈다 ^,^
비오는 날
아침 깨니
부실 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 오십 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들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오는 아침의 이 신비감을
나는 어이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대로 살다가
개끗이 눈 감으리오
ㅡ 천 상 병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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