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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님의 소천을 애도 합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 원로목사 " 목사님의 고통은 우리의 기도가 되었고, 기도는 사랑의교회를 하나로 묶는 은혜의 삼겹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 드렸지만 목사님은 떠나시는 순간까지 기도의 제물되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거룩한 회생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저희들에게 예수님의 작은 제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던 목사님, 그 가르침을 가슴깊이 받아 저희들은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겠습니다" ㅡ담임목사님 말씀중에서ㅡ

2010.09.03

탕자의 귀향(렘브란트)

헨리 나우웬은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에서 렘브 란트의 그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의 두 손은 아주 대조적이다.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그 아버지의 왼손은 강하고 힘이 있어 보이고 그 손가락들은 쫙 펴진 채 탕자의 어깨와 등을 크게 덮고 있다. 마치 강하게 붙잡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반면 그의 아버지의 오른손은 부드러우며 매우 다정해 보인다. 그 손은 어루만지며 쓰다듬고 위로와 평안을 주는 어머니의 손과 같다. 힘있는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고 부드러운 왼손으로 어루만져 준다. 오른손은 확신을,왼손은 위로를 주고 있다. 참으로 그분은 부성과 모성을 완벽하게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이시다.부드럽게 어루 만지는 오른손은 이사야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가 자기의 젖 먹는 아이를 잊겠느냐? 자기..

2009.06.20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들(Rick Hoyt)이 말한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Dick Hoyt)가 대꾸 한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하지 않았다" 미국 전역을 눈물바다로 만든 부정(父情)이라는 제목이 달린 동영상(www.mncast.com)의 한토막이다.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라는 장애로 식물인간이 될거라는 의사의 경고에도 아들을 포기할수 없었던 아버지 였다. 끝내 아들의 소원대로 마라톤을 나가 42.195km를 완주했다. 그리고 4년 뒤 아들의 "철인 3종경기에 나가고 싶다"는 더 큰 꿈을 꾸기 위해 아버지는 또 다른 모험을 강행 한다. 허리에 아들이 탄 고무배를 묶고 3.9km 거리의 바다를 헤엄 친다. 아들을 태운채 자건거로180.2km의 용암지대를 넘는다. 마침내 아들이 ..

2008.03.22

누굴 가장 사랑해?

누굴 가장 사랑해? 그는 가고 없지만 오늘도 그가 만든 노래는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 든다. 이십여 년이 넘게 환자를 섬기는 요즘, 환자들을 떠나보낼 때 예전과는 다르게 주체치 못하는 눈물과 함께 아픈 감정을 많이 갖게 되었다. 1년 반 년 전, 직장암으로 수술한 형제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상황이 내리막 길로 달려가 복부 주변과 수술한 인공항문까지 암세포들이 비집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장 루 주변에 너무 골곡이 많이 생겨 장루 봉투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붙어 있질 않았다. 주변으로 새어 나오는 오물을 닦아내는 그의 아내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제는 아프지 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나 아프다고 했었다. 얼마나 그 고통이 심하였던지 통증 조절을 위해 계속 모르핀을 요구 했다. 줄..

2008.03.20

사랑의 대화

사랑의 대화 사랑의 대화는 가난을 이기게 만듭니다. 사랑의 대화가 있는 곳에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사랑의 대화가 있는 곳에는 마음이 병을 치료해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16:24) 선한 말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말입니까? 형제의 아픔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 자기의 잘못을 형제에게 고백하며 대화하기를 원하는 말이 선한 말입니다. 남을 용서하며 사랑으로 덮어주기 위해서 눈물로 대화를 나누는 그 말이 선한 말입니다. 그 선한 말은 너무나 귀한 것이어서 꿀송이 같다고 했습니다. 또 그 말을 듣는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던 질병을 치료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뼈가 썩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한 말을 ..

2007.05.02

로제타 셔우드 홀

의료선교사 홀 남편과 딸을 한국 땅에 묻고...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홀(William James Hall,1860~1894)은 1890년에 한국에 들어와 의료선교로 복음을 전하다가 1894년 11월24일,35세의 일기로 소천했다. 남편을 잃고 4살과 3살의 남매를 데리고 미국에 돌아갔던 이 여인은 3년 후 다 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남편이 사역하던 평양에 들어가 치료의 손길을 베풀다가 다시 세살 된 딸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맹인교육과 병원사역을 하며 한국의 교회 부흥과 의료 발전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하다가 1951년 4월 5일, 85세 일기로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하였다. 이 여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조선을 위해 옥합을 깨트렸던 여인, 로제타 셔우드 홀..

2007.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