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송편 만들고 집 가까이 있는 추사고택을 다녀 왔다. 뜰 안에 목단 꽃 활작핀 81년 봄날인가
한번 가보고 처음이다. 애들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 ... 문 앞에서 두딸.
관람도중 젊잖으신 할아버지께서 젊은 사람들이 이런곳 아이들 데려오기 쉽지 않은데 왔다며 무척이나
기특해 하신다. 잘 둘러 보라며 나이든 아드님과 가옥 구조에 대해 열심으로 대화를 하신다.
조선의 대 학자이자 서예가이며 정치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숨결을 뒤로 한채 돌담 벽에서 막네의 끼.
1786년 6월3일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병조참판 김로경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추사는 문중의 축복과 기대를 온 몸에 받으며 자랐다. 첫돌이 지나면서 말과 글
이 퇴었다 한다. 선생은 1809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호조 참판이던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에 건너갔
다. 거가서 수많은 학자와 폭넓은 교류와 학게에 선풍을 일으키고 돌아와 병조판서와 성균관 대사성까
지 오르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추사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풍양조씨의 득세에 밀려 1840년부터 9년동안
남제주군 대정읍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에 '세한도'등 추사체를 완성했고,1856년 10월
71세의 일기로 경기도 과천에서 작고 하였다.(올해150주기).. 뒷뜰에서 한컷 ^^
고택 왼쪽으로 내려가면 화순옹주(영조2녀)묘와 정려문이 있고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 예산의 백송이
있다. 이 백송은 추사 선생이 25세때 생부 김노경을 따라 자제군관 자격으로 청나라 연경(북경)에 다녀
오면서 씨를 가져다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앞에 심은것으로 원래 밑에서 세 가지로 갈린 수형이었는데
두 가지는 고사하였고 현재는 한 가지만 남아 있다. 수령은 약 200년이며 수고는 약 10m이다.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햇살이 좋은 가을이다.그립고.,.고독해지고 싶은 계절에 추사의 생가를 찾아 한옥이 가지고 있는 고풍스러움과 추사체로 쓴 선생의 작품을 한번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온양온천, 도고온천 ,덕산온천,아산 스파비스같은 대형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이게 남들이 말하는 테마여행이고 문화여행이지 않나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에
ㅡ 봄 날ㅡ
화순옹주 정려문
정려문(旌閭門)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을 기리고자 정조
가 명정한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부군 월성위 김한신(1720~1758)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작고하자 그때부터 식음을 전
폐하고 부왕 영조의 만류에도 뜻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려정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명정 하였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려라고 한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아내 한테 보낸 첫 메일 (0) | 2006.11.24 |
---|---|
드림파크 국화축제 (0) | 2006.10.30 |
7년산 도라지. (0) | 2006.10.11 |
추석,송편.. (0) | 2006.10.08 |
용미리 가는 길.. (0) | 2006.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