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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추억

봄날3 2007. 9. 1. 13:30

     월간 작은숲 9월

                                            비 오는 날의 추억

 

     요즘 들어 거울을 볼 때면 낮선 여자의 얼굴이 보입니다. 어느덧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는 나이

     가 되었으니 새삼 내가 많이 자랐다고 느낍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했던 나는 비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해서,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일부

     러 우산을 챙기지 않고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마중 나온 엄마들 손에 들린 우산을 함께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속상해할 때도 많았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네 살 때부터 할아버지할머니에게서 자란 나에게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디다려줄 사람을 기대하는 건 사치였으니까요.

     그날도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지만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학

     교 앞에는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길게만 느껴지던지 기분이 울적해졌습니다.

 

     집에 왔더니 할아버지가 물으시더군요.

    "오다가 할머니 만나지 않았니?"

     할머니가 우산을 들고 저를 마중 나가셨다는 거여요. 부리나케 박으로 뛰쳐나가자 저 멀리서 다

     리를 절둑거리며 걸어오는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할머니 손에는 우산 하나가 더 쥐여있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뒤로는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가지 않는 일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그제야 할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스무 살이 된 지금 어린 시절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두 눈에 눈물이 먼저 고입니다. 엄마없이 저를

     키우느라 마음고생 심하셨을 할머니 생각에 가슴 한켠이 짠해 집니다.

     아직도 제가 물가에 세워놓은 갓난아기 같아 걱정하고 계실 할머니, 이렇게 철없는 손녀는 할머니

     의 나이를 조금씩 빼앗아 가며 철이 드는 모양입니다. 할머니,사랑합니다. 제가 효도 다할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월간 '작은숲' 어느 독자가 쓴 글을 읽다가 비오는 날  블로거 님들과 함께 하려고 급조한 창밖에

      우산쓰고 가는 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올려 봅니다.

      경기도 군포에 산다는 글쓴이와 할머니의 행복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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