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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는 가족

봄날3 2007. 8. 25. 11:54

내 그림은 모두 가짜다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는 시신 한 구가 뉘여 있었다. 영양실조와 황달로 몰골이 아닌 시신은 가족도 친구도 없이 무연고자로 사흘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한국 최고의 화가 이중섭의 마지막 가는길은 이처럼 쓸쓸했다.

 

 그의 대표작 <소>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중섭의 삶은 가난과 고독에 시달려 어두었다. 일본 유학길에 만난 마사코와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지만 생활고로 아이와아내를 일본으로 보낸다. 그리고 중섭은 내내 그들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마사코와 제주도 서귀포에서

함께 살았던 1년이 그의 삶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2평이 채 안되는 낡고 허름한 방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게와 조개를 잡으며 그림을 그렸다.

 

 1952년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에 보낸 뒤 그는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술집에서도,부둣가에서 짐을 나르다가도,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종이 살 돈이 없엇던 그는 책 표지,장판지,럭키스트라이크 양담배 은박지에 까지 그림을 그렸다.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흘러 흘러 멀리 바다 건너까지 닿았을까. 일본의 아내는 어느 날 남편에게서 소식이 끊어지자 편지 한통을 보낸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지금까지와 같이 위대한 인내력으로 당신으로 부터의 길보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꼭,꼭,꼭 좋은일이든 나쁜일이든 소식을 전해주세요."

그 즈음 그는 자신의 그림을 몽땅들고 김광림 시인을 찾아가 '내 그림은 모두 가짜'라고 탄식하며 그림을 불살라 달라고 했다. 가난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마음껏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데서 그는 절망했다.

 

 이중섭, 그가 가장 바랐던 것은 가족의 단란한 삶이었다. 세상과 단절된 채 병고와 혹독한 가난 속에서 그는 <길 떠나는 가족>을 그렸다. 아내와 아이들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자신은 소를 끈 채 따뜻한 남쪽나라로 떠나는 모습을 담은 <길 떠나는 가족>은 이루지 못할 소망으로 남고 말았다.

 

                                                                                         ㅡ 월간 '작은숲' 9월호 3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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