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선교사 홀
남편과 딸을 한국 땅에 묻고...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홀(William James Hall,1860~1894)은 1890년에 한국에
들어와 의료선교로 복음을 전하다가 1894년 11월24일,35세의 일기로 소천했다.
남편을 잃고 4살과 3살의 남매를 데리고 미국에 돌아갔던 이 여인은 3년 후 다
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남편이 사역하던 평양에 들어가 치료의 손길을
베풀다가 다시 세살 된 딸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맹인교육과 병원사역을 하며 한국의 교회 부흥과
의료 발전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하다가 1951년 4월 5일, 85세 일기로 미국
뉴저지에서 소천하였다.
이 여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조선을 위해 옥합을 깨트렸던 여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이다.
남편의 장레식이 끝난 후 모여진 얼마의 돈으로 남편의 기념비를 세우자는 의견이
있었을 때에 홀 부인은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남편에 대한 진정
한 추모는 하나의 차갑고 비싼 대리석이나 화강석으로 만든 비석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발전시키고 고통을 덜어주는 사랑이 바탕이 되는 병원
을 세우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닥터 홀 부부의 아들이며 캐나다 출신 페결핵 전문 의료 선교사로 한국 최초 크리
스마스실을 발행한 셔우드 홀의 <조선회상> 중에서
1984년 부친의 묘소를 찾은 셔우드 홀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