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마패~1620년대 제작된 진품?

봄날3 2008. 10. 6. 07:28

암행어사 출두요 ♪~

 

 광혜군13년~인조6년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삼마패가 책상 서랍에 뒹굴러 다니다 몇년전 부터 안

 보이더니 집안 청소 하다가 광명을 찾았다

 

 

 상서원에서 발행한 표시로 우측에 상서원(尙瑞院)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중간에 지자호삼마패(地字號

 三馬牌)라고 쓰여져 있다

 천계사년삼월 일(天啓四年三月  日)이라고 쓰여 있는데 조선의 연호를 찾아 보니 '천계'광혜군13년~

 인조6년이라고 한다. 왼쪽에 직인은 '상서원인'이라고 쓰여 있다.

 

 

       마패는 하나 인데 최대한 잘 보이기 위하여 바탕색과 빛을 바꾸어 가며 양면을 몇장 찍었다

 

 

15년전 수원시 길가의 밭둑에서 주웠는데 그 당시는 정체를 알아 볼 수가 없어 흙에다 문질르는 바람에

 약간은 원상태가 손상 된듯하다

 다른 마패들을 검색해 보니 말 모양이 아주 흡사한 것 부터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한것까지 다양한 모습

 을 볼 수 있었는데 가에 홈이나 모든면에서 그 당시의 마패와 같아서 진품이라 해 본것이지 오래전에

 만든 모조품인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관광지에서 기념으로 구입한 것은 아니라는 점, 모두 670여개의 마패를 주조 해 사용했다

 는데 그 속에 포함 될것 같은 개인적인 생각과 진품과의 비교에서 많이 흡사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역사가 있는 수원에서 발견 했다는 점,아주 오래된듯이 보였던 점...하지만 모조품이라도 암행

 어사 출두는 한번 해 보고 싶다 ^^

 

 

         너무 지저분해 흙에다 놓고 발로 비볐더니 글자가 좀 닳았다 ^^  제일 아래 글자 '日'

  

마패는 재료에 따라 목조마패,철제마패,동제마패로 구분되며 초기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세종 16년에

철제로 제조하였다.(1434년)경국대전 시기에는 구리로 만들어 상용 되었다. 마패의 한 면은 등급에 따라

마필의 수효를 새기고 다른 한 면에는 자호와 연,월 및 상서원인 이라하여 옥새와 인장및 병부를 담당했

던 상서원에서 발급한 내용이 적혀 있다. 영조 시대에 암행어사는 보통 세 마리의 말을 부릴 수 있는 삼

마패를 가지고 다녔고,암행어사의 삼마패가 탐관오리들을 한 방에 처단할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면 오마

패는 얼마나 큰 권위의 상징이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마패를 파손 한 자는 장(杖)80,도(徒)2년의 형벌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기도 하였고,마패를 위조하

면 위조한 자를 문책하여 목을 잘라 걸어놓는 효수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또 마패를 주워 헌납한 사람에

게는 큰 상을 내리기도 했다는 것들이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마패는 귀한 징표였기 때문에 왕이 낙향한 신하를 도성으로 불러오기 위하여 마패를 하사하기도 하였고

말의 숫자 문제로 인하여 귀한 삼마패 이상의 마패와 일마패를 동시에 가지고 다니며 보통때는 일마패

를 보여주며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삼마패를 보여 암행감찰 활동 및 시

급한 징계를 올리는 일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때 사용돤 마패의 전체 숫자는 각 도에 있는 것이 160여개,서울에 있는 것이 510여개로 약 670

여개를 사용 하였다.

 

조선 후기 상하이에서 김옥균을 살해하고 돌아온 자객 홍종우가 전북 순창에서 의병장 최익현의 마패를

훔쳐 서울까지 도망했던 일은 마패에 얽힌 최후의 사건이다.

 

이후 마패는 조선말기까지 사용되다가 전신,전화 등 말의 속도를 능가하는 서구 문물들이 급속하게 유

입 되면서 역참 제도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최형국기자의 글 일부인용)

 

                                                    ㅡ 봄 날 ㅡ